<김명열칼럼> 외롭고 힘든 고독의 터널에서…………..

<김명열칼럼> 외롭고 힘든 고독의 터널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병들이 있다. 이 많은 병들 중에 한가지라도 그 병에 걸리게 된다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생명을 잃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각종 병들 중에 병이 아닌 병이 있다. 즉 고독이라는 병이다. 얼마 전 어느 유명한 연예인이 자살직전에 이러한 말을 남긴 것이 주목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백번을 넘어 생각을 해봐도 세상엔 나 혼자 뿐이다” 세상살이 살아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치의 목적이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이러한 고독사를 없애고 어우러진 다함께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 못하는 병이 고독이라는 병이며, 평생을 살면서도 느끼지 못하던 사람도 이승의 생을 이별하고 저승으로 떠나면서 마지막순간에라도 한번은 느끼는 병이 고독이라는 병이다. 고독이란 추억이 많을수록, 기억력이 좋을수록 느끼는 병이며, 고독에 몸부림친다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외롭고 홀로라는 인간본연의 자신을 깨달을 때 느끼면서 몸부림치며 짜릿하게 느끼는 병이 고독이기도 하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가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85일 동안 한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8척이나 되는 큰고기, 청새치를 낚아 가까스로 잡은 물고기를 끌고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잡은 물고기는 이미 상어떼에 다 먹혀버리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허무와 공허를 느끼게 만든다. 그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등의 작품을 통하여 그가 풀고자 노력했던 인간의 감정들이 바로 그 고독이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으로 1953년에 풀리처 상을 받았고,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1961년 헤밍웨이는 고독을 못 이겨 엽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그의 유서에 “지금 나의영혼은 필라멘트가 끊겨진 전구처럼 고독하고 어둡다” 라고 자기의 마지막 고독한 심정을 표현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비록 세상의 부와 명예를 다 거머쥐었지만, 어둡고 우울한 인생의 고독을 거장 헤밍웨이도 이길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넘치는 시상(詩想)으로 수많은 작품을 지어내 조선의 시가(詩歌) 흐름에 커다란 획을 이뤘던 송강 정철(1536~1593)은 말년의 외로움을 이렇게 읊었다. “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亭子)라도 쉴이 없다. 호화로이 섯을적엔 올이 갈이 다 쉬더니, 잎 지고 가지 꺾인 후에는 새도 아니 앉는다”고집스러운데다 정쟁(政爭)도 마다않는 거친 성격으로 세상을 살았던 그도 노후에는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당쟁(黨爭)에 휩쓸리며 욕을 먹었던 것과는 달리 청빈한생활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한 삶이었다니 더욱 그는 외로움 속에 고독을 느꼈으리라 생각이 든다.
흔히들 나이가 들어 대접을 받으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말을 한다. 지갑이 부실하다면 하다못해 두 귀나 마음이라도 열어야 할일이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누구러지기는 커녕 더욱 고집스럽고 편협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평상시 흉허물 없이 잘 지내던 친구와도 어느 날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이고는 마음이 상해 “그 녀석 이제 두번 다시 안 본다” 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한다. 젊은 시절에는 다음날 곧바로 술잔을 부딪치며 웃어넘기던 일도 나이가 들어선 오히려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워 고집을 부린다. 그러니 남는 건 노여움과 서운함과 고독뿐이다. 이런 것을 계기로 고독의 병이 싹트고 생겨나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한때 스스로 빠져드는 고독은 인간적인 성숙에 필요한 과정일수도 있다. 의미없이 지내온 일상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나와 남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인간관계를 재설정하는데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인생 황혼기에 맞닥뜨리는 고독은 위험한 존재이다. 평생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기회도 되겠지만 자칫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자폐적인 절망에 빠져드는 덫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외롭지 않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살아가면서 외로운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장담할 사람역시 없을 줄로 안다. 한때 “고독이라는 병”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그러한 표현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서건 홀로 남겨지면 낙오되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심지어는 전염병을 앓듯이 끙끙거리다가 너무 외롭고 고독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고독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생기는 비극이다. 고독은 그저 터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자. 장거리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게 터널이듯이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통과해야할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면 머리와 가슴, 어깨를 짓누르는 고독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고독을 잘 다루는 사람이 잘 살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잘 산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든 돈이든 명예이든, 뭣이든 간에 상관없다. 그런 것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알고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한테 저절로 따라오는 것들이니까……..
나는 늘 생각한다. 왜 봄이 되면 꽃이 피어나는가? 그 이유는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다. 고독의 병속에 휘말려 심하게 몸살을 앓고 죽음까지 생각했다가 그 고독의 병에서 회복되어 그것을 떨치고 일어난 어느 경험자의 이야기이다.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나에게 고독이란 이름으로 내 앞에 피어난 봄의 꽃들은 바로 나를 일으켜 세워준 축복이었지요”. 이렇게 본다면 고독이란 병이 아니라 인생을 보다 윤택하고 나 자신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하는 청량제와 영양제 같은, 삶의 밑거름이 되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칼럼니스트 / 탬파거주> myongyu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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