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열 기행문<26> 사우스다코다주, 크레이지 호스 조각상(Craze Horse)

 

김명열 기행문<26> 사우스다코다주, 크레이지 호스 조각상(Craze Horse)
여행작가 및 칼럼니스트 / myongyul@gmail.com
다음날 아침, 우리는 Custer State Park 인근에 있는 크레이지 호스(Craze Horse)조각상을 만들고 있는 곳을 방문했다. 이곳 역시 산을 깎아 수(Sioux)족이 배출한 걸출한 전사 크레이지 호스를 기념하는 조각상을 만들고 있는 현장이다. 1948년에 공사를 시작해 현재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정으로 본다면 20% 정도나 제대로 완성되었을까? 아직도 모든 작품이 완성되려면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공사가 완공이 되면 폭195m, 높이172m를 가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조각상이 탄생할 것이다. 현재 모습을 드러낸 얼굴의 크기만 27m에 이른다. 지금도 이곳은 거대한 바위산을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키며 각종 중장비를 동원해 1년 열두달을 쉬지 않고, 머리칼을 휘날리며 말을 타고 용감하게 달려가는 크레이지 호스 인디언추장의 거대한 조각상을 화강암 바위산에 새기고 있다.
원래 이곳 블랙힐스(Black Hill’s)는 수족이라는 인디언들의 성지로 불리울 만큼 주위환경이 빼어날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 그러나 카스터 중령이 이끄는 백인기병대들이 이곳을 침범해 점령하자 오직 창과 활만으로 그들 기병대를 섬멸시킨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바로 크레이지 호스라는 인디언추장이다. 그러나 그도 결국에는 휴전 중 다른 기병대의 하급 졸병에게 기습을 당해 죽고 말았지 만 지금까지 그는 모든 인디언들로부터 위대한 전사자로 추앙받고 있다.
오늘날 이곳에 이렇게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게 된 장본인은 재능이 뛰어나고 독학으로 공부한 한 젊은 폴란드계 미국인조각가 코르차크 지올코프스키였다. 1939년 어느 날 코르차크는 사우스 다코다의 파인리지 인디언보호구역에 사는 나이든 라코타 인디언추장인 핸리 스탠딩 베어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추장은 사우스 다코다주의 블랙힐스에다 전설적인 한 인디언추장을 기리는 기념물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라코다 인디언들은 블랙힐스를 인디언의 신성한 영토로 여기며, 조각가인 거트존 보글럼이 그 신성한 블랙힐스 한가운데에 있는 러시모어 산에다 미국대통령 네 사람의 거대한 조각을 완성한 것에 대해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스탠디 베어추장은 코르차크에게 이렇게 써서 편지를 보냈다. (나와 동료 추장들은 인디언에게도 위대한 영웅들이 있다는 것을 백인들에게 알리고 싶소) 이 공사의 시작은 이렇게 수족의 염원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땅, 블랙힐스에 미국대통령 4명의 얼굴을 새긴 미국정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그 인근에 크레이지 호스 기마상을 세우기로 하고 마운트 러시모어공사에 보글럼의 조수로 참여했던 코작 지올코브스키 조각가를 선택하여 그에게 부탁을 했다. 단돈 174달러로 시작한 공사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진전을 이뤄갔다. 얼굴이 형체를 드러내자 미국정부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했으나 인디언 원주민 염원사업에 그 돈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을 했다. 생각을 해 보면 그들다운 참으로 통 큰 결정이었다. 기념관 안의 극장에서 공사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통해 재원마련에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코작의 가족과 자원봉사자, 기부자의 재정적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진척이 많이 느린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1인당 입장료 15달러가 처음에는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공사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공사현장으로 가까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도 돈을 받는다.
처음,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첫 번째로 할일은 근처에 있는 러시모어 산의 조각상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조각상을 만들 산을 고르는 것이었다.
마침내 1947년에 코르차크와 스탠딩 베어추장은 그러한 목적에 알맞는 산을 골랐다. 그 산의 꼭대기에 솟아있는 봉우리의 높이는 200미터였고 산 꼭대기까지의 해발고도는 2050m였다. 코작은 그 산을 소나기 구름산이라고 불렀는데, 가끔씩 산위에 보기드믄 형태의 구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코작은 한정된 자금을 가지고 이 기념비적인 일에 착수하였고, 처음에는 혼자서 일을 하였다. 1948년 6월3일에 처음으로 다이나마이트 폭파작업이 있었는데 그때 10톤이라는 그리 많지 않은 양의 바위가 폭파되어 떨어져나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1994년까지 그 산에 어림잡아 840만톤의 바위가 폭파작업으로 떨어져나갔다고 하니 그 공사의 규모가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지금 현재도 대규모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참고자료에 의하면 크레이지 조각상은 쭉 뻗은 왼팔과 말을 합하면 높이가 172m에 길이가 195m나 되는 세계최대의 조각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팔 길이만 해도 69m이며 앞쪽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도 길이가 11.4m이고 두께가 3m나된다.
젊은 시절에 크레이지 호스(1840~1877)는 “그의 말이 서있는 것이 보인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에게 크레이지 호스(라코다어로는 타숭가 윗코)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아마도 그가 20세가 되기 전이었을 것인데, 그의 집안에서 그 이름이 붙여진 사람은 그가 3번째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보다 앞서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역시 그 이름을 지녔었다. 그 역사적인 전투에서 티톤 수족(라코다족)과 샤이엔족 연합군 약 2천명이 조지 암스트롱 카스터 중령과 그가 이끄는 기병대 215명을 섬멸하였고 마커스 리노 소령과 프레더릭 벤틴 대위가 지휘하는 기병 증원부대를 패주시켰다. 미 기병대는 총과 칼을 무기로 들고, 인디언들은 오직 활을 가지고 총에 맞대응을 한 장엄하고 결사항전의 전투였다. 크레이지 호스는 그 전투에서 인디언을 이끈 지휘관중 한 사람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곳을 관광하고 나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오랜 옛날에 만약에 우리 한국인들이 인디언과 같은 입장에 처해있었다면 어떠했었을까? 하는 상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트럼프가 이제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될텐데, 소수민족인 노랑둥이 동양인인 우리 한국 사람들은 백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차별을 더 받게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과거 역사를 회고해보면 백인들은 인디언들보다 무척 더 잔인하고 포악한 사실을 역사적 기록으로도 엿볼 수 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경관 좋은 주변의 수림 속을 드라이브하며 자연 속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버팔로 들소들의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 소리에 세속의 때 묻은 생각들을 모두 씻어낼 수 있었다. 자칫하면 여행 스케줄에서 빠뜨릴 뻔했던 이곳의 크레이지 호스 기념관과 조각상을 만드는 현장, 산을 방문하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내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1051 / 122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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