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독자투고>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세월의 탓일까? 늙어감의 모습일까? 누군가가 말했다. 늙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고…… 가을이란 왠지 스산하며 쓸쓸하며 허전한 듯 한 공허의 계절 같이 찬바람이 도는 것 같다.
그러나 이 Florida 올랜도의 가을은 여전히 여름이며 덥다. 한두 달만 빼고는 거의 사철 常夏의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11월은 엄연히 가을의 달이다. 이 가을에 난 왜 가을에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못하는 그 사람이 온통 이 가을을 노래하며 그리움으로 가득한 것일까?
“여보! 나갔다올게, 잘 쉬고 있어, 아프지 말고 알았지.”
난 남편한테 당부하면서 문을 열고 나가려면 빙그레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손짓해준다.
“여보! 나 왔어요. 잘 쉬었어! 괜찮아?”
난 또 말을 건넨다.
“재미있었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남편이 반겨준다.

남편은 5년 전부터 몸에 이상신호가 오더니 심장수술, 혈관수술, 각막수술 등 신체에 변화가 오며 투석을 하기 시작했다. 작년 이맘때, 남편은 우리 곁을 떠났다. 다시는 만져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고, 모든 게 정지된 상태, 너무나 어이없게도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다.
“여보! 난 이대로도 좋으니 당신 10년만 더 살아요. 난 얼마든지 당신을 Care 할 수 있어.”
“아냐, 당신 너무 힘들어서 안 돼. 내가 어떻게 10년을 살아!?”
자고 일어나면
“오늘 갔으면 좋겠다.”,
“그런 소리 하지도마, 갈려면 나 호강시켜주고 다시 보상하고 가. Cruise도 가고 하와이도 가고 유럽여행도 다 데리고 간다고 약속했잖아!, 알았어!”
난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여보! 미안해, 그 점이 정말 미안해”
그러나 “난 안 돼, 못가, 못가. 난 당신을 보낼 수도 없고, 당신도 나 두고 어디 갈 생각 말아요.”
“아파도 좋으니 그냥 이대로 계속 병원 다니며 Dialysis 하면서 함께 같이 하자고요”
난 애원했다.
그는 나를 힘없이 한참을 바라본다. 남편한테 난 물었다.
“여보! 내가 누구야? 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나를 끝까지 지켜주는 고마운 아내!”
나의 등을 쓸어주며 우리는 부둥켜안고 함께 소리 내며 또 얼마나 울었는지…….
“여보! 당신 오늘 참 예쁘다. 그 큰 눈이 다 어디로 갔어?
“당신이 하도 속 썩여서 눈이 짜부러졌잖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고만 한다. 난 처음으로 남편한테 예쁘다는 소릴 들었다. 남편은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당신 눈이 참 맑고 깊다.”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우린 같이 울면서 밤새 손을 붙잡고 체중이 턱없이 줄어든 그 모습에 초연하며 불쌍하고 측은하며 안타깝고 미안했다.
아무런 약속도 지켜주지 못하고, 아무런 시원한 말도 해 주지 못하고 그냥 미안한 표정으로…… 나는 소리 지르며 울면서 “안돼요! 못가요, 못가” 하면서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눈가에 눈물이 흐르며 그렇게 그는 하나님 나라로 평안히 갔다.
“여보! 내말 들려? 내 맘 알지?”
난 집에 들어서면 많은 얘기를 주고받는다. 오늘은 누구를 만났고, 누구와 식사를 했고, 어떻게 지냈고, 아이들과 주고받은 이야기 등등…….
그이는 언제나 내 곁에서 마치 “여보, 나 좀 일으켜 줘. 나 좀 안아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사람. 남편은 젊었을 때는 체격이 좋고 운동은 다 잘하고 다부지고 우람했다. 아프고 나니 50kg도 안 되고 휘청거린다. 남편은 으레히 먼저 손잡아 달라고 한다. 진정 사랑이 무엇일까? 주는 게 사랑! 아낌없이 다 주어도 못주어 안타까워하는 게 사랑일까? 상대방을 측은히 여기며 보듬어 주고 끌어 안아주고 탓하지 않는 것이 지정한 사랑이라 표현해도 되는지? 그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순수한 아름다움의 선한 마음이,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이웃에게 전달 될 때에 그것이 참사랑인지 모르겠다.
결혼생활을 통해서 우리는 흔히, 미운 정 고운 정, 정 때문에 산다고 한다. 그런데, 그 미운정이 더 애틋하고 가련하며 씁쓸하며, 더 다가가기 원하는지. 그것이 미운 정이 주는 사랑인가보다.
사실, 젊었을 때는 웬수? 같았다. 떠나고 싶은 때도 많았다. 좋은 인연은 악연이라드니, 필연이 되고 말았다.
떠나기 2주 전에 남편은 “여보! 오늘은 우리 꼭 껴안고 잘까?”
“그래요.”
그날 우리는 정말 안아주며 부서질 듯한 남편의 체온을 느끼며 눈물로 밤을 보내며 한없이 흐느끼며 울었다.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 “아! 이제는 얼마 안 남았구나.”
난 어떻게 서서히 가는 남편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나를 두고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남편은 타고난 미성으로 노래를 잘한다. 교회에서 테너로 봉사하고 솔로를 하면 반주자도“집사님은 테너의 전설” 이라고 극찬해 준다. 떠나기 5개월 전 부활주일날 그는 마지막 특송으로 “오! 거룩하신 주님”을 정말 멋있게 불러주었다. 환자가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모두들 감탄했다. 한 5년만 더 살게 해 주시지 너무나 안타까운 나이에 하나님은 그렇게 더 고생하지 말라고 야속하게 데려가셨다.
내 마음이 당신 마음이고, 당신 마음이 내 마음이기에 나는 매일 당신을 보면서, “여보! 내맘 알지?” 하면서 확인한다.
“그럼, 알아! 알고 있어.”
늘 웃어주는 남편의 미소에 고마워하며, 잘 적에도 “여보! 잘 자요!” 부드럽게 속삭이며 전해준다.
어린아이 같이 투정하며 목욕을 시키려면 뼈만 남아 부서질 듯한 그이의 몸을 보며, 난 또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우리는 서로가 후회스럽지 않기 위해 격려하며,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힘을 주고 편안하게 다 해 주었는데…….
“여보! 잘 먹어야 해, 곡기가 끊어지면 죽어!”
“못 먹겠어.”
한 달 전부터 통 식사를 못한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큰 소리로 기도하며 울부짖었는데…… 남편은 끝내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그렇게 울고 있는 나를 두고 눈에 눈물이 흐른 채 떠나갔다.
이 가을에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다. 보고 싶다. 너무나 보고 싶다. 그리워진다. 이 가을에 생각이 아주 많이 난다. 내겐 소중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
48년을 함께하며 간 고마운 사람이다.
<임영자 / 올랜도 거주>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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