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진짜 얼굴은? (3)

<김현철칼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진짜 얼굴은? (3)
미국에서 이승만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정부(이하 임정)는 황해도와 경기도 출신 기독교인들(기호파)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승만의 반민족 행위나 사기 행각을 전혀 모르고 있던 이들은 황해도가 같은 고향인 이승만의 학벌과 기독교인임을 내세워 임정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하와이 한인갱단 두목이며 사기꾼 이승만이 일약 임정 초대대통령이 된 것이다.
이런 기회를 노리던 이승만은 즉시 워싱턴디씨에 임정 ‘구미위원부’를 설치하고 독립운동에 쓴다며 목표액이 5백만 달러(현 시가로 약 5천억원) 짜리 국채를 발행하면서 하와이 내에서의 돈벌이와는 비교가 안 되는 큰 사업가(?)로 변신한다.
동시에 이미 임정이 독립애국자금을 모으고 있던 것을 즉시 중단하고 앞으로 자금 분배는 자신이 할테니 지금까지 모은 자금 전액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비기호파 측이 크게 반발, “재정 분배는 재무부 관할이니 각하가 채권 발행을 중단하시오”하고 반발한다.

이 무렵 임정요인들은 애국 동포들의 성금으로 국내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부를 만들어 비밀조직을 확대하고 임정 예하 만주 독립군을 통합하고 본격적인 독립 전쟁 준비에 착수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비행학교를 건립, 왜왕의 머리를 부수겠다는 각오로 공군 창설도 추진한다.
이승만은 기호파를 포섭해 재정권 장악을 추진했고 이에 따라 재무총장 이시영은 1920년 3월 드디어 구미위원부에 모금 업무 전부를 맡김으로써 이승만에게 승리를 안겨 주자 임정은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임정 각부의 차장들은 집단 사퇴 결의를 하면서 구미위원부 폐지와 이승만의 대통령직 사퇴를 요구한다.
이승만은 이제 거칠 것 없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모금 운동을 벌인다.
그래서인지 역사가 서중석(성균관대)과 정병준(이화여대) 교수 등은 이승만의 해외에서 한 모든 언행은 자신의 돈벌이와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승만은 46세 때 자신을 따르던 김노디(Nodie Kim 22, 오벌린대 유학생) 양을 데리고 여행하는 동안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을 이용하며 호화스런 세월을 보낸다. 이런 행각 끝에 1920년 6월 어느 날 미 수사관은 쎈프란씨스코에서 ‘여자와 부도덕한 성관계를 위한 동숙 목적으로 주 경계선을 넘는 자는 체포한다’는 주법에 따라 플레이보이 이승만을 체포한다.
당시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승만을 체포, 기소한 이유가 ‘백인 여성들을 유혹, 데이트했으며 딸 같은 나이의 노디 양과의 합숙’이었다.
아무 유력인사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재판을 받게 되면 자신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음을 안 이승만은 또 잔꾀를 부린다. 사법당국에 싹싹 빌면서 하와이에서 재판을 받게 해 달라며 통사정을 해 이 위험한 고비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다.
현지 재판부가 이승만의 요청을 받아들여 하와이에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때 마침 쎈프란씨스코 동포사회는 전 미국을 돌아다니며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줄로 믿고 거대한 임정 이승만 대통령 환영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이 환영회에 참석하고 만의 하나라도 자신의 기소 소식이 알려져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동포들에게까지 전해지면 개망신은 물론, 모금운동은 실패할 게 분명했다.
이승만은 “이유는 묻지 말라, 환영회에 참석할 수가 없다”고 환영회 준비 인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한다.
1920년 6월 29일 호놀룰루에 온 이승만은 오래 사귀어 온 백인 인사들과 접촉, “이승만은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다”는 백인 유력인사들의 증언으로 기각 결정을 받아내 또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는데 성공한다. 이 잔꾀를 누가 당하겠는가.
1920년 12월 28일, 이승만은 드디어 대통령이 된지 만 1년 만에 상해 임정 환영식에 참석한다. 식이 끝난 후 이승만이 사기꾼임을 모르던 임정 요인들은 “대통령은 정부에서 근무해야 효율적이다. 만일 안 된다면 권한을 임정 국무회의에 위임해 달라”며 순진한 요구를 한다. 독립자금 전부를 좌지우지하던 이승만이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이승만은 더는 임정요인들이 딴 소리를 못하게 하고 독립자금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 1921년 초, 대통령 연두교서와 ‘독립운동전략’을 전격 발표한다.
그 내용은 1) 우리 형편상 전쟁준비는 국민에게 맡기는 게 옳다. 2) 국내외 일반 국민은 작업에 종사하면서 여가 시간에 병법을 연마한다. 3) 무기도 각자 구하라. 4) 그러다 좋은 시기가 오면 일제히 일어나서 싸우자.
이게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대통령의 ‘독립운동전략’이란 말인가?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대통령직을 이용해서 오직 자기 개인 돈벌이에만 열중한 사기꾼 이승만의 실체였으니 임정 요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음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들이 정성껏 모아 보낸 독립자금으로 독립군을 양성하고 있는 임정에, 돈자루를 쥔 이승만은 직접적인 독립운동과는 무관한 ‘외교’를 내세워 모금액 중 겨우 13%만 보내고 87%는 자기 호주머니에 차곡차곡 저장한 것이다.
이승만의 이러한 행동은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자기가 이번 기회에 큰 돈을 모아야겠다는 것이오, 두 번째는 국민들에게 전쟁준비를 하라고 하고 무기도 각자 알아서 구입하라고 하면 상해로 직송하는 독립자금이 급감하고 자금이 고갈된 임정은 자기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어서 자신의 위상은 절대적인 것이 되리라는 것, 이거야말로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인물’이라는 미 중앙정보국의 이승만에 대한 인물평이 정확하지 않은가!
이에 임정요인 및 독립 운동가들은 차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기 시작한다. (계속) kajck@naver.com <955/20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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