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실체 (2)

<김현철칼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실체 (2)

진실성이란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던 교활한 이승만이 틈만 나면 당시 하와이 거주 동포들 앞에서 우는 소리로 “내가 일본 감옥에서 당한 고문으로 이렇게 손끝이 시리다”며 손가락이 아픈 양 두 손 열 손가락을 구부려 아픈 척 쑈를 했고 이를 본 순진한 동포들은 함께 가슴 아파했다.
이는 자신이야말로 ‘존경받을 수 있는 애국자요, 독립운동가’임을 믿게 하려는 얕은 수작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단 한 번도 일제하에서 감옥에 간 사실이 없었다.
나라를 빼앗긴 후에도 미국 신문을 통해 친일행동을 하는 이승만에게 상은 못 줄망정 일본정부가 그를 체포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이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먼 파렴치범으로 잠시 감옥 생활을 했던 것은 고종황제 때인 이조말의 일이니 이것 한 가지만 봐도 사기성이 농후한 이승만이 아닌가.
이런 속임수로 이승만을 조국의 독립영웅으로 받드는 순진한 지지자들이 날로 늘어났다. 그렇게 되자 사이비애국자 이승만은 “맹목적으로 나를 따르라”고 교육, 자기 추종자들을 확보해 나갔다. 당시 이승만의 목표는 박용만 장군이 총재로 있던 ‘대한하와이국민회(이하 국민회)’를 자신이 장악하는 것이었다.
‘국민회’야 말로 애국심의 발로로 전 미주지역에서 동포들이 한푼 두푼 모은 독립자금을 보내오는 독립운동 단체였고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 조달처였던 것이다. 이승만의 목표는 바로 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박용만 장군이 미국에서 일본 공격용 한인 군대를 양성한다고 미국 당국에 고발해서 법정에 세우고 박장군에게 “국민회와 이 단체 통제권을 내놓으면 고소를 취하하겠다”며 수많은 추종자들을 동원, 협박했다. 박장군이 호락호락하질 않자 이승만은 추종자들을 앞세워 총까지 쏘아가며 대격돌을 벌였고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은 살해하겠다고 엄포 끝에 국민회에서 박장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승만은 숙원인 국민회를 장악하자 독립자금을 이용, 부동산 재테크에 착수, 사이비 애국자요, 사이비 기독교인인 사기꾼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다.
하와이 주법원 기록에 따르면 1914년 7월 14일, 전 미주 한인들이 힘겹게 모아 준 ‘한인여학생 기숙사 건립기금’ $2,400을 마음대로 목적을 변경, 부동산을 구입하고 즉시 그 자리에서 전 부동산 주인인 프레드 베링거에게 저당을 잡힌 후 현금 $1,400을 빌린다. 조건은 1년 후 전액 상환, 연리 8%였다.
그러나 1년 후 빚을 안 갚자 베링거는 독촉장을 보냈고 이승만은 이 빚을 국민회가 갚으라며 채무를 국민회에 떠넘겨 버렸다.
국민회 재산인 한인학교도 단 돈 $1에 인수하는 등 이런 짓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사재를 불려 나갔으니 고등 사기꾼 뺨치는 수완이 아닌가.
부동산 2건을 저당 잡혀 $4,250, 남학생 기숙사 저당으로 $3,500, 그 후에는 국민회의 전 재산을 팔아 목돈을 챙겼다. 이것이 하와이 한인 갱단 보스 이승만의 재테크 비결이었던 것이다.
당시 이승만이 저지른 범죄는 독립운동을 빙자한 범죄로 현행법으로 보아도 징역 7년 이하에 처할 죄질이 아주 나쁜 범죄였다.
1918년, 이를 보다 못한 안현경 국민회장은 모든 증거를 구비, 이승만 총재 불신임안을 제출함과 동시에 퇴진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이승만이 누군가? 추종자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죄를 입증할 물증을 강탈하기 위해 폭력까지 동원했으나 물증을 쥐고 있던 안회장 측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은 또다시 국민회 대의원인 유동면, 김한경, 김석률, 이찬숙 등 네 분을 ‘폭동예비위험인물’들로 미국 경찰에 고발한다.
하와이 신한민보 기사(1918,2,27)에 따르면 이승만이 법원에 나와 재판장에게 “재판장님, 이들은 박용만 패당이며 미국 영토 안에 한국군대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위험한 반일 운동을 하며 일본 군함 ‘이즈모’가 호놀룰루에 입항하면 파괴하려는 음모까지 꾸민 자들입니다. 이것은 미 일간 중대한 사건을 일으켜 두 나라 간 평화를 방해하려는 짓입니다. 저들을 의법 조처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당시 신문 기사 제목은 “통곡할 재판 사건, 5천명 동포 모두 망신이로다”였다. 이러한 민족반역자 이승만의 행동은 조국에 대한 명백한 배신행위로서 당시 기자도 편집인도 통곡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승만이 한국인이 아닌 프랑스인이었다면 1944년 8월, 프랑스가 나치로부터 해방됐을 때 ‘A급 민족반역자’로 법정에서 사형을 면할 수 없었을 테지만 사기꾼 이승만은 미국의 비호 하에 금의환향, 건국 대통령이 되었으니 이게 우리나라의 운명이었다는 말인가?
(계속) kajhck@naver.com <940/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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