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신라의 화랑은 원래 여자 화냥花娘이었다

<김현철칼럼>신라의 화랑은 원래 여자 화냥花娘이었다

우리가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운 ‘화랑花郞'(꽃같은 사내라는 뜻)은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오,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꽃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국사새로보기’에 따르면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우리의 옛 역사 서적 중 가장 오래 됐다는 <삼국유사> 원본의 ‘화랑’을 가리키는 대목 즉, <改爲花娘=냥>에서 ‘화냥기花娘氣’라는 ‘화냥’을 쓰고 있어서 분명히 여자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하긴 여자에게 꽃 같다는 ‘화’는 잘 어울리지만 남자에게 꽃 같다는 표현은 안 쓰는 게 정상이다.

그렇다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광복 후 이승만은 당시 국방부 이선근 정훈국장에게 국군의 사기를 높일 목적으로 청년문화 유산을 발굴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이선근은 1954년에 발표한 저서 <화랑도 연구>를 출판하면서 윤관,충무공,병자호란의 삼학사,개화파,독립협회,동학혁명,3.1운동 모두가 ‘화랑정신’이라고 주장하면서부터 우리의 역사는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 화냥은 원래 ‘원화源花’라 불렸으며 추석 때 서라벌 여섯 개 마을 여자들이 모여 두 패로 나뉘어서 길쌈내기를 했다. 그러다가 이것이 국가적 행사로 발전하면서 원화가 화냥花娘냥으로 바뀌었지만 역시 여자들의 행사였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결국 이선근 및 그를 따르는 학자들은 화랑이라는 단어의 뿌리인 ‘삼국유사’조차도 읽어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한자 발음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만든 ‘동국정운’, 조선조 최고의 어문학자 최세진의 ‘훈몽자회’, 조선조 후기 음운학자 정윤용의 ‘자류주석’ 등 모든 고서들에서 화냥의 냥자를 ‘랑’이 아닌 ‘냥娘’으로 발음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선근 및 그를 따르는 학자들은 화랑이 한 때 타락해서 화냥으로 불리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화랑이 타락했다는 역사적 근거는 어느 역사 서적에서도 규명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화랑을 호국의 꽃인 남성으로 미화시킨 자기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궤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신라 후기 진흥왕 때부터 진성여왕에 이르러 화냥은 사내’낭’자인 화랑花郞으로 바뀌면서 얼굴이 예쁜 남자들을 처음으로 선발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남자 화랑이 우리들 역사책에 나오듯이 진정한 무사들이었다면 남성답고 우람한 사내들을 뽑지 왜 예쁜 남자들을 뽑았을까?

당시 신라의 세 여왕은 부락장, 제주祭主(무당), 의녀를 겸한 존재로 이미 여왕이 형이상학적 존재인 주신主神에게 출가한 몸이었기에 결혼을 할 수 없었기에 남자 화랑, 즉 궁남宮男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 화냥이라는 여자용 이름이 이제는 더 어울릴 수가 없었을 터이다.

특히 남자 화랑들이 득세했던 시절인 진성여왕 때 여왕과 궁남들과의 진한 연애담은 ‘삼국사기’ 진성여왕편과 ‘화랑세기’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결국 화랑의 ‘세속오계’ 역시 이선근이 정훈교제에서 주장한 것이었을 뿐 어느 역사서적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계율로서, 실제로는 당시 서민청년들의 생활규범이었다.

그러다가 신라 후기부터 다시 화랑의 이름이 국선國仙으로 바뀌는데 고려에 들어오면서 ‘고려사지’에 ‘왕손은 국선이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음은 ‘왕손이 어찌 궁남이 될 수 있느냐’는 뜻이다.

조선조에 이르러 다시 화랑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면서 화랑은 이제 박수무당의 뜻으로 바뀐다. 당시 박수무당은 판수(장님 점쟁이)와는 달리 백수건달의 뜻도 있어서 허우대도 좋고 잘 생겼으며 풍류를 알아야 했기에 ‘한량’이니 ‘활량’이라는 단어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신복룡 교수(‘한국사 새로보기’ 저자, 충북출신)는 이선근이 궁남이었던 ‘화랑’을 미화할 게 아니라 차라리 당나라에 대한 고구려의 항쟁에서 국혼과 청년의 기백을 찾는 것이 옳았음을 아쉬워하는 한편 화랑의 변천사를 잘 꿰뚫어 보지 못한 일부 역사학자들은 아직도 ‘화냥花娘이 화랑花郞의 오기’ 나 된 듯이 주장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언제나 바로잡힐까? 예나 지금이나 언론을 비롯해 강자에의 아부근성이 강한 제2 제3의 이선근이 계속 존재하는 한 올바른 역사책이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kajhck@naver.com <924/201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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