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언론의 정도는 ‘골빈 짓’인가?

<김현철칼럼> 언론의 정도는 ‘골빈 짓’인가?

10 여 년 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자 평소 가까이 지내던 동포 사회의 중견 인사 한 분이 “이제 서울로 가시겠군요?” 하면서 나의 입에서 언제쯤 떠난다는 말이라도 들어야겠다는 듯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1974년도 미국으로 이주 후 부터 미국 내 각종 신문에 반독재 및 모국 민주화를 위한 글들을 써온 탓으로 군사독재정권의 반정부 인사로 찍혀 왔기에 DJ가 집권하면 분명히 뭔가 한자리하기 위해 귀국할 것으로 판단했던가 보다.
하긴 북미주 내에서 반독재 투쟁을 한 신문 발행인들 중 몇 분은 DJ가 당선되자 이미 귀국해서 정계에 뛰어 든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그간 너무 많은 국내의 언론인들이 독재정권도 마다 않고 청와대 비서관부터 장관, 차관, 국회의원, 하다 못해 중앙청 각 부처의 공보관에 이르기까지 출세가도로 뛰어 든 게 사실이었기에 이분의 추측이 무리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나의 대답은 이분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사람 잘못 보셨소”였다. 기자 생활을 이용해서 언젠가 정계에 들어갈 뜻을 가진다면 어찌 권력과 금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고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겠는가?
내가 개인 DJ를 위해 반독재 기사를 써온 게 아니라 30여 년이라는 질기고도 지루한 군사독재의 혹정으로 모국의 민주주의를 40~50년 씩 후퇴시켜버렸고 이에 빌붙어 양심을 속이고 잘 먹고 잘 사는 일부 인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민이 당하는 피해가 안타까워서, 정치인 중 우리 민족의 미래가 걸린 남북통일 문제, 경제 분야 등에 어느 정치인 보다 박식하고 그때 까지만 해도 가장 때가 덜 묻은 민주 투사 DJ가 그 대안으로 떠올랐을 뿐이었다.
DJ 집권 몇 달 후 집안 일로 서울에 들렀을 때 ‘한나라당’ 쪽이었던 숙모님 댁에 인사차 갔다가 그곳에서 정부 고관 부인을 만나게 되었다. 숙모는 이 고관부인에게 “이 조카가 한겨레저널을 몇 번 보내 줘서 읽어 봤는데 글쎄 그토록 야댱성이 강한 사람이 이제 여당지가 된 서울의 한겨레신문 기사를 인용하면서 여당 지를 만들고 있지 뭐야! 아주 실망했어” 하며 나를 성토하는 것이었다. 이 고관 부인도 기득권 세력으로 한나라당이 집권하길 바랐었기에 자연히 아주머니의 말에 공감했다.
나는 기가 차서 ‘DJ가 이제 막 집권했으니 아직은 비판할 내용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실정이 나타나면 미국에 살고 있는 나보다 서울의 한겨레신문이 먼저 비판기사를 다룰 것이다. 바로 그 신문만은 누가 뭐래도 언론의 정도를 가는 신문’이라면서 이분들의 말을 막아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중앙,동아 등 DJ가 야당 시절 DJ 저격수 역할을 한 국내 주류신문들은 숨을 죽이고 눈치만 보는데 DJ 재임 중의 “옷 로비사건”, “조폐공사 파업 검찰유도 사건”, “여당 3.30 재·보선 자금 50억 사용 사건”등 집권한 이래 DJ정권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던 굵직한 사건들이 조,중,동이 아닌 바로 한겨레신문이 터트린 특종 기사들이었던 것이다.
집권 전 DJ의 ‘국민회의’는, 국내의 각 언론사 기자들과 공무원들의 여론조사 결과와 똑같이 한겨레신문을 가장 믿을 수 있는 공정한 신문이오, 유일한 구세주로 믿어 왔다. 그러한 국민회의가 집권 2년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한겨레신문을 상대로 백일(101)억 손해배상 소송(선거자금 50억 사용 폭로기사 때문)을 제기했다. 그간 세상이 바뀐 것이다.
며칠 후 ‘민주언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던 DJ의 지시로 이 소송은 결국 취하됐지만, 언론의 정도(正道)를 슬쩍 망각한 척하고 눈치껏 집권자 측에 잘해 준다면 분명 출세의 길이 보장되는 한국의 정치 풍토를 DJ 측이 재야시절 가장 가깝게 믿어 온 한겨레신문 기자들인들 몰랐겠는가?
‘기자는 항상 약자 편에서 강자 편을 바라보는 자세, 만년 야당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언론인의 기본자세를 주류 언론이 아닌 바로 한겨레신문 기자들은 지금까지 올곧게 지켜 오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기자의 옳은 길을 이탈하지 않고 DJ 집권 얼마 후, 나 역시 DJ 정권의 잘못을 속속 보도하고 있었다.
위에 말한 이 고장의 중견인사는 DJ 정권의 비판기사를 다루던 당시의 한겨레저널을 보고 “이 사람, 그 동안 출세 길을 잘 닦더니 이제 스스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군, 아무 쓸모없는 친구야”하고 비웃었겠지?
가시밭 길이라는 언론의 정도는 일제 때 잔악무도했던 일본 경찰의 회유에도 끝내 굽히질 않고 자나 깨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독립투사들이 가던 가시밭길과 너무도 닮은 데가 많다.
이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이기주의자들 눈에는 이 이상의 골빈 짓(?)은 없을 것이다. “왜 적당히 기자 생활을 발판으로 남과 같이 출세를 못하는가?”하고 비웃겠지.
그러나 긴 안목으로 역사를 돌이켜 보라. 극소수 “골빈 자들”의 역사관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조금씩 개선되어 왔지 않은가!
거기에 덤으로 얻는 것은 평생을 지저분한 정권에 빌붙어 호의호식하지 않고 정의를 추구하는 올바른 기자로 살다 갔다는 해맑은 명예가 내가 떠난 후에도 뒤따른 다는 사실이다. kajhck@naver.com <898/2013-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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