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훌륭한 베트남 민족성

채명신 주월군 사령관을 인터뷰하고 있는 필자<1967년7월8일>

<김현철칼럼> 훌륭한 베트남 민족성

베트남(월남) 주둔 한국군이 한참 용맹을 날리던 1967년 6월 어느 날이었다. 당시 MBC(문화방송)사회부 기자로 군 출입을 하던 나는 베트남에 머물면서 사이공, 퀴논, 나트랑, 후에, 출라이 등 한국군 주둔지역을 돌며 특종 깜을 찾아 영웅을 만들 수 있는 장병 발굴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채명신 주월 한국군 사령관과의 단독인터뷰를 마친 직후 나는 보도실장 P중령의 지붕 없는 짚차로 ‘사이공’ 시내를 들러 임시숙소인 ‘촐롱’의 ‘밧탓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무더운 날씨라 마냥 달리는 것이 시원했든지 운전병은 사이공 중심부의 신호등이 빨간불로 막 바뀐 것을 그냥 무시하고 달렸다.
바로 이 때 교통정리대 위에 있던 베트남 순경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 순간 나는 만약 서울 시내에서 미군이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렸을 때 호루라기를 불어대는 경찰관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이런 경우 씩 웃고 말든지, 아니면 그냥 못 본 체하는 것이 지금껏 내가 보아 온 한국 경찰이 아니던가?
‘주둔군 고급장교의 차를 설마 저희들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베트남 경찰관의 호루라기 소리도 못들은 척 운전병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불과 2-3초나 지났을까, ‘탕’ 하는 총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경찰관이 우리 쪽을 향해 달려오면서 총을 쏘고 있지 않은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P 중령은 즉시 차를 세우도록 명령했다. 그 경찰관이 달려와 영어로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는 말이 “남의 나라에 왔으면 그 나라 국법을 지키시오. 아니면 법에 따라 처리하겠소.”하는 것이었다.
곧이어 P 중령이 정중히 사과를 함으로써 이 경찰관의 관용(?)을 받아 사건은 일단락됐다. 경찰관이 돌아간 후 나는 달리는 차안에서 혼잣말처럼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아니 주둔군 장교의 차에 발포를 하다니!” 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P중령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월남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프랑스 사람들에게 착취당해서인지 타민족에 대해 무척 배타적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하는 것이었다.
내가 베트남으로 떠나기 몇 달 전, 광화문 네거리를 거닐다가 교통정리대 위에 올라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미모의 여순경 바로 앞에 미군사병이 아예 짚차를 세워놓고 장난기 섞인 큰소리로 “How much?(얼마면 되요?)”하고 소리쳤고 여순경은 이 짓궂은 미군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듯 피식 웃으면서 딴청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동서남북으로 뚫린 대로에서 다른 차들은 이 짚차를 피해 가는데도 이 미군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끈덕지게 그 여순경에게 “How Much.”하면서 빨리 대답을 하지 않는 여순경을 바라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족히 1~2분은 지나서야 미군은 짓궂게 웃으면서 그 자리를 떴다. 베트남에서 주둔군 장교차를 향해 발포를 하는 교통경찰의 모습과 이 얼마나 대조적인 장면인가?
베트남에서의 그 사건 이후 이들을 대하는 내 마음은 과거의 ‘업신여김’에서 ‘경외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우리 한민족의 비굴한 사대주의 사상 대신 꼿꼿하고 당당한 베트남 사람들의 민족의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kajhck@naver.com <897/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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