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흑인 민권투쟁 덕을 보는 미국 내 동포들

<김현철칼럼> 흑인 민권투쟁 덕을 보는 미국 내 동포들
얕잡아 볼 게 아니라 흑인들에게 감사해야

이아무개씨는 대부분의 다른 동포 상인들처럼 흑인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는 흑인 보다 백인 인구가 훨씬 많은데도 언어 소통에 자신이 없는 동포 대부분은 상품 하나 사는데 꼬치꼬치 따져 묻느라 몇 십분씩 시달려야 하는 백인들을 피해 훨씬 단순한 흑인들을 상대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이아무개씨가 내게 와서 며칠 전 자기 가게에서 일어 난 일을 들려주는데, 나는 가끔 동포 상인들이 같은 경우를 당하는 내용이라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씨는 그 날 따라 손님이 많지 않아서 책을 보고 있는데 30대쯤 보이는 흑인 남자 손님이 들어오더란다. 그래서 일어나 이 손님 시중을 드는데 상품을 거의 열 개를 보여 줘도 살 생각은 안 하고 또 다른 상품을 보여 달라고 하기에 또다시 흑인 손님이 요구한 상품을 꺼내면서 저쪽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있는 부인을 향해 “아침부터 재수 없게 깜둥이 새끼가 애먹이네.” 하고 투덜댔더니 부인도 동의한다는 듯 남편을 바라보고 머리를 끄덕이며 웃는 순간, 흑인 손님이 또렷하고 부드러운 한국말로 “욕은 마시고…” 하더란다.
그것도 화를 내지 않은 조용한 목소리로… 깜짝 놀란 가게 주인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아니, 한국말을 아세요?” 했더니 이 흑인은 “그럼요, 흑인 학생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있는데요.” 하더란다. 이 흑인은 서울의 어느 대학 유학생이었다.
그 후 이 흑인 손님에게 친절을 다해서 상품은 팔았지만 그 후부터는 미안한 마음이 계속되면서 흑인 손님들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우리 한국인들이 미국에 와서 ‘인종차별’을 느낀다며 투덜댈 때면 그 때마다 나는 그래도 미국은 다민족이 사는 나라라 인종차별이 한국보다는 훨씬 덜한 셈이라면서 오죽 심했으면 전 세계 어딜 가나 화교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데 바로 가까운 나라라는 한국에서만 중국인들이 못 살고 쫓겨났을까? 하며 한국 국민들의 인종차별이 어느 정도 인지를 설명하곤 한다. 국내에서는 그나마 중국인들은 나은 편이다. 미국,유럽 계통의 백인들은 오히려 훌륭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 밥벌이라도 하겠다며 노동을 하고 있는 필리핀, 인도, 태국, 네팔, 베트남 등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더욱 심한 차별과 수모를 당하고 있는 현실이란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심해서 영구 귀국한 한인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현지에 적응을 못해서 귀국했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인종차별 때문에’ 라는 말은 여태껏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미국에 이주해서 살고 있는 한인동포들이 꼭 알아야할 것은 흑인들이 수백 년 동안 민권투쟁을 해온 덕에 우리 동양계가 이 만큼이나마 차별을 덜 당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깜둥이 새끼”라며 욕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민권투쟁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한인 이주자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들에게 항상 ‘감사’의 정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당당하게 아프리카 ‘캐냐’ 출신 아버지를 둔 흑인 대통령(오바마)까지 탄생했으니 이제 흑인의 위상은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달라졌지만 지난 1950년대 까지도 흑인들은 백인들이 가는 레스토랑과 화장실을 같이 쓸 수 없었고 버스마저도 저 뒤쪽에 쭈그리고 있어야만 하는 수모를 당해왔다. 우리 한인동포들이 미국에 대거 이주한 1970년대 이래 백인들이 쓰는 화장실이나 레스토랑, 버스 등을 같이 이용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이미 이러한 인종차별을 완전히 없앤 뒤였기에 눈에 안 보이는 차별은 있을망정 옛날 흑인들이 당했던 수모는 당하지 않고 살아가지 않은가.
좀 더 실감이 나도록 지난 오랜 세월을 흑인 지도자들이 펼쳐 온 민권 운동 및 미국 내 흑인들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미국의 흑인을 말하는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은 먼 옛날 아메리칸-인디언 원주민들과 같이 거주했었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서기 1619년 8월 20일(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오기 16개월 전) 네덜란드 선적을 가장한 영국 선박에 고용계약을 맺은 수많은 흑인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부분 아프리칸-아메리칸은 1860년경부터 노동계약이 아닌 노예로 끌려왔으며 이 수는 무려 1천3백여만 명에 이른다.
아프리칸-아메리칸은 그 후 4백년이 흐르는 동안 피나는 민권투쟁 끝에 이제는 미국에서 정치, 국방, 법조계, 종교계, 교육, 과학, 예술, 문학,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동양계 이민(당시 대부분이 중국인)들이 북미주에 대량 이주한 1910년대부터는 이미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끈질긴 투쟁으로 옛날 같은 인종차별을 훨씬 덜 받는 개선된 조건을 향유할 수 있었음을 우리 동양계는 알아야 한다.
그밖에 흑인 지도층의 민권운동사를 보자.
노예기간(1500-1865)에는 법적으로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재산이라고 명시했으며 북쪽의 미국인들 다수가 노예 매매를 했다. 이에 가브리엘 프로서(Gabriel Prosser), 덴마크 베시(Denmark Vesey), 냇 터너(Nat Turner) 등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후레드릭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s), 드레드 스캇 (Dred Scott), 해리엣 텁맨(Harriet Tubman), 소저너 투르스(Sojourner Truth) 등이 법적으로 노예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남북전쟁(1861-65)이 끝나고 노조가 승리함으로써 노예문제 등 여러 관련 문제들이 해결 되어 가면서 드디어 링컨 대통령은 동맹국(연합국) 내에 있는 노예들에게 해방선언(1863)을 하고 노예들의 자유를 선언하였으나 이에 속하지 않는 주에서의 노예들은 아직 자유를 찾지 못했다.
1865년부터 5년 간 정부는 노예주의(Slavery) 폐지, 흑인들에게 시민권 부여, 그리고 투표권까지 주자 이에 반발한 백인들은 1865년 창립된 쿠 클럭스 클랜(KKK, Ku Klux Klan) 조직 등이 이에 폭력으로 대항했으며, 1870년대에 짐 크라우법(Jim Crow Law)은 다시 미국 남부 내에서의 흑인불평등, 인종차별적 내용을 명시했다.
이에 자극 받아 흑인 민권단체인 터스키기 연구원(Tuskegee Institute, 1881), 국립유색인종 진보연합(The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NAACP, 1930), 미도시연맹(The National Urban League, 1911) 등 흑인 민권단체들이 속속 발족했다.
대규모의 흑인 저항운동은 1955년 앨라바마 몽고메리에서 버스에 탄 ‘로사팍스(Rosa Parks)’씨가 흑인용의 뒷자리로 옮기지 않는 항거(범법)를 단행하면서 일어났다. 그 후 계속된 저항운동에 따라 1964년에 다시 흑인들이 시민권 획득을 명시한 ‘시민권 법령(The Civil Rights Act)’이 통과된 것은 자랑스런 업적이다.
미국 흑인들은 이에 더 나아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며 미국 내 각 분야에서 정치적 역량을 쌓아 온 노력의 열매로 토마스 브래들리, 콜맨 영, 이글램 딘킨스 등 대도시의 시장들을 탄생시켰다. 이밖에도 실업문제, 교육, 주거, 의료보험, 알콜중독, 마약중독 등 흑인들의 문제 해결점을 찾는 등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의 귀에 익은 지난 흑인민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포월 목사(Rev, Adam Clayton Powell, Jr) — 할렘가에서의 저항운동에 앞장.
킹 목사(Reverend Dr. Martin Luther King, Jr.) — 민권운동에 가장 영향력을 발휘했던 인물로 무저항운동을 펴 1964년도 노벨평화상 수상, 1968년에 암살됨.
써굿 마샬(Thurgood Marshall) —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임명된 흑인 대법관(1967-1991)으로 국립유색인종진보연합을 위하여 법적으로 투쟁.
말콤 X (Malcolm x) – “흑인 이슬람교” 리더로 인종차별과 억압에 대항한 운동. 1965년 암살당함.
잭슨 목사(Rev. Jesse Jackson) –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권익과 민권운동을 폈으며 1988년에는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에 거의 오를 뻔한 인물이다. kajck@naver.com <896/201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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