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모습 (19) 

<김현철칼럼>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모습 (19)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피해자들

항상 울며 기도하는 독실한(?) 개신교회 집사(후에 모 교회 장로가 됨)인데다 말주변이 뛰어나고 언어 소통이 어려운 동포들을 위해 통역을 해 주는 등 주변 동포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아 온 분이 어느 날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동포 5~6명을 모아 놓고 ‘대형 슈퍼마켓이 망해서 나간 건물에 투자자(주주)들의 공동 중역 체제로 후리마켓(Flea Market)을 운영해 나갈 생각인데 투자해 볼 생각들이 없느냐? 개업하는 대로 각자 투자 비율에 따라 배당 수익이 엄청날 것임을 장담한다,
물론’, ‘대표사장(이후 사장)은 영어가 통하는 내가 맡을 테니 염려말라’고 귀가 솔깃한 말을 던졌다. 투자자들은 ‘어차피 회사 설립 등 영어가 필수 조건’인데 투자자 중 누가 그 일을 해내겠는가 싶어 사장 역시 적임자라 믿었다. ?
당시의 후리마켓은 ‘어디에 열어도 돈방석’이라던 시절인데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있다’ 싶어 아직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처지들이지만 모두가 있는 돈을 긁어모아 최소 3만 불에서 최고 6만 불까지 건물 내의 후리마켓 내부 공사비용으로 충분한 약 20만 불을 아무 조건 없이 전달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서 드디어 ‘주주 공동 소유'(?)라는 후리마켓이 문을 열었고 투자자들은 사장을 100% 믿고 일체의 후리마켓 운영을 맡겼다.
개업 후 몇 주일이 안 되어 사장이 주주총회를 요청했다. 총회에서 사장은 돈이 자꾸 들어가니 계속 각자가 투자액을 증액 시켜달라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투자자들은 더 내 놓을 돈도 없는데다 처음 말과 달라진 사장의 요청에 사업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면서도 몇 차례 요구에도 회사 설립 관련 서류를 공개하지 않는 사장의 자세가 석연치 않아 회사 설립 서류를 열람해서 주주 모두가 중역으로 이름이 올라 있는지 확인부터 하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들이 들었다.
결과는 각자가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으니… 자신들의 이름은 회사 서류상 어디에도 없는 대신 사장 부부 이름만 나란히 사장과 부사장으로 올라 있었다.
결국 사장 부부는 투자금 한 푼도 내놓지 않고 다른 투자자들의 돈을 이용해서 이 회사의 실질적인 사주가 되었으니 투자자들이 애당초 사장을 무조건 믿어, 돈을 건네 줄 때 ‘투자자 공동 소유’ 조건을 명기한 서류를 작성하지 않은 자신들의 실수의 결과였음을 통감했다.
‘믿었던 도끼에 발 찍혔구나’하고 놀란 투자자들은 사장을 다그쳤다. 돌아 온 대답은 ‘회사 서류 중 사장단 이름에 사장 부부 이름만 올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이상 투자자들의 이름을 중역 명단에 올릴 수는 없다’며 ‘배째라’는 뱃장으로 나왔다.

갑자기 사장의 인상이 사기꾼으로 바뀌면서 언제나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바치는 독실한 기독교인의 모습 등이 오늘을 위해 꾸며진 위선적인 ‘쑈’였음을 뒤늦게 깨닫고 투자자들은 서로가 가슴을 치며 이 사람에게 속아 이민 후 한 푼 한 푼 열심히 저축했던 전액을 몽땅 털어 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혀를 깨물며 후회했다.
원금이라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드디어 소송을 벌였다. 플로리다의 경우 규모가 큰 사기사건이 넘쳐나서 피해액이 3백만불 미만이면 수사대상이 안 되기에 민사법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민사문제란 승소 후 투자액과 몇 푼 안 되는 법정이자만 채무자의 능력 되는대로 돌려받는 것, 시간을 질질 끄는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승소 후 또 돈을 돌려받기까지 또다시 몇 년… 그동안 약아빠진 사장 자신은 여유 있게 벌어 모은 돈 중 푼 돈 갚듯이 여러 차례에 걸쳐 투자자들에게 빚을 갚았으니 자기 돈 한 푼 안 들이고 사장 부부는 이제 빚이 한 푼도 없는 후리마켓의 주인이 되었다.
소송 중에 국내에서 유명한 기독교 장로요, 실업가로 명성이 있는 사장의 장인(부사장인 부인의 생부)이 딸네 집에 왔다가 피해자(투자자)들과 만나자는 전갈이 왔기에 피해자들은 ‘이젠 됐다’며 고명한 장로라면 일을 올바로 해결해 주지 않겠는가? 하고 희망을 걸었다.
투자자들의 희망이란 투자를 한 푼도 안 한 사장에게는 상당한 봉급 및 주식을 배당해 주고 투자자들에게는 처음 약속대로 중역 명단에 전원이 들어가 이득을 분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로님은 얘기를 다 듣고 나서 하는 말이 ‘여러분 말씀을 다 들어봤지만 내 사위가 하나도 잘 못한 게 없다. 그냥 소송 후 투자액을 돌려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피해자들은 ‘그래도 고명한 장로님이라기에 일말의 기대를 했었는데 사기성 기질은 장인이나 사위가 똑같다’며 욕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 장로님이 애당초 피해자들을 만나자고 한 것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자는 게 아니라 자기의 명성을 이용해서 피해자들을 설득해 더 이상 딸 부부를 괴롭히지 말고 법원 명령에 따라 원금에 이자나 받으라고 타이르려던 것이었음을 피해자들은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자 사장은 필자와 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투자자들이 애당초 투자만 했고 공동 중역을 요구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변명하는 내용의 기사를 냈다. 그 후에도 필자와 신문사는 그 일로 고소를 당한 적이 없었으니 ‘고소’ 운운 한 것은 사장의 일시적인 체면 유지책이었던가? (계속) kajhck@naver.com <878/2013-05-07>

(필자는 이번까지 19편의 ‘내가 본 마이애미지역 한인사회의 옛 모습’을 있는 사실 그대로 그려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할 일은 몇 편 더 남은 내용은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시간에 좀 덜 쫓겨 어느 정도 한 숨을 돌릴 수 있을 때 20편부터 다시 여러분을 찾아뵙겠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어쭙잖은 글을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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