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후의 삶을 알면 보다 행복해진다. (1)

죽음 후의 삶을 알면 보다 행복해진다. (1)

필자가 철이 없던 지난 날, ‘누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근사체험 近死體驗)든지 ’인간이 죽은 후 영혼만이 저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말들을 들을 때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 했었다.
20여 년 전 뒤늦게야 철이 나 ‘죽음’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을 때 필자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요, 심리학자인 ‘레이먼드 무디’(Raymond Moody, 1944~)박사가, 죽었다가 살아 난 100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연구서인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 등,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이 세상에서는 처음으로 ’죽음의 학‘(Study of the Death)을 창시해 그 시조가 된 ’퀴블러 로스‘(Elisabeth Kuibler-Ross, 1926~2004, 정신의학 박사)의 여러 임상연구서(’사후생‘ 등)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었다.

필자는 위 두 과학자의 저서들을 통해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죽음이란 단지 이번 삶에서 낡은 몸을 버림으로써 고통과 고뇌 대신 축복과 평온이 있는 다른 존재로 변화해 가는 과정일 뿐이며,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부조화는 몸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 저 세상에서도 영원히 살아남을 단 한 가지는 오직 ‘사랑’이라는 것, 그러므로 ‘지금’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결론으로, 인생이란 육신을 가진 이 세상만이 아니라 육신을 벗고 난 후 저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까지를 통 털어 나의 인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이 세상은 내 인생의 절반 밖에 안 된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필자는 물질에 집착하는 정도가 전에 비해 많이 약해졌고 평소에 아주 가까웠던 친지의 장례식에 가서도 예처럼 슬픔이 복받치는 경우가 없어지는 반면 겉으로는 유가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슬픈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며칠 전에 세상을 뜬 망자가 느낄 진심어린 축복과 평온함을 마음속 깊이 축하해 주는 위선자가 아닌 위선자가 되었다.

또 미국에 노예로 끌려 온 흑인들의 후손들이 사는 뉴올린스(New Orleans) 지역의 흑인 장례 행렬에 브라스밴드(Brass Band) 연주자들이 어깨를 좌우로 흔들어대고 신나게 재즈(Jazz)를 연주하며 행진을 벌일 때 유가족과 조문객들은 이를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며 그 뒤를 잇는 모습을 아주 해괴하게 느꼈던 지난날에서 이제는 아주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되었다.
과학자들이 수많은 근사체험자들을 인터뷰한 후 내린 공통 결론은, 근사체험자들의 대부분은 죽은 직후, 바로 자신의 곁에 있던 의사나 간호사 등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죽었다’는 말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상쾌함을 느끼면서 아직은 살아 있는 귀로 듣는다는 것.
또 평화스럽고 고요함을 느낀다는 것. 앞에 어두운 굴이 보인다는 것. 몸 밖으로 나가서 그 굴을 뚫고 밝은 새 세상으로 옮긴 후 자신보다 먼저 죽은 친지 등 ‘영적 존재’들을 만난다는 것.
이어 빛의 존재'(신적 존재)를 만나 대화한다는 것. 이때가 ‘빛의 존재’를 통해 순식간에 모든 지식을 습득하는 기회라는 것. 또 ’빛의 존재‘는 종교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어느 종교를 믿었느냐는 질문은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세상을 어떻게 살다 왔느냐? 즉, 남을 괴롭히며 살았느냐? 아니면 베풀면서 살았느냐? 라고만 물음으로써 많은 종교인들이 실망한다는 것.

지나 온 자신의 삶을 영화를 보듯 돌아본다(Panoramic life view)는 것. 강이나 바다 같은 경계에 도달하고, “아직 지구상에서의 역할이 남아 있다”는 ‘빛의 존재’의 권유에 따라 떠나오기 싫으면서도 마침내 자신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 등이다.
‘무디’ 박사가 만난 근사체험자 중 한 분은 이 세상으로 돌아 온 후 일주일 동안이나 울었는데 그 이유를 묻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저 세상을 보고 난 후 이 세상에서 더 살기가 싫었는데 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계속) kajhck@naver.com <850/201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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