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완전 나체로 수만 명이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

터닉의 예술 사진, 벨쥼 부루게의 5층 극장을 가득 메운 나체 미인들. 앞에는 엎드린 뒷모습, 뒤에는 서있는 뒷 모습들.

터닉의 예술 사진, 벨쥼 부루게의 5층 극장을 가득 메운 나체 미인들. 앞에는 엎드린 뒷모습, 뒤에는 서있는 뒷 모습들.

<김현철칼럼> 완전 나체로 수만 명이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

누드 예술(Fine Arts Nude = 나체 예술)의 발달사를 보면 인류문명이 시작될 당시인 신,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 등을 풍만하게 그렸는데도 그 당시의 순수했던 사람들은 ‘외설이니’, ‘예술이니’를 따지지 않고 작가나 관중 모두가 자연스런 인간의 ‘다산'(多産) 과 ‘풍요'( 饒), ‘행복’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한다.
그 후 고대 그리스 시대를 지나서야 성인 남성의 동상 조각 작품 ‘디스코볼루스'(BC 5세기, Discobolus), ‘미의 여신 비너스'(BC 3세기, Venus Goddess of Beauty)의 누드상, ‘동로마시대(15세기)와 르네상스'(16세기) 때 청동상 대신 고대 그리스 시대의 동상을 복사한 대리석 상들이 등장했다.

그 후 ‘미켈란젤로’의 남성 조각 ‘다비드'(Michelangelo’s David, 16세기 초)에 이어 ‘우르비노'(Urbino) 지방의 영주(領主)의 부탁으로 영주의 애인(창녀)을 그린 ‘티티아노’의 명작 ‘우르비노의 비너스'(Titian’s Venus of Urbino, 16세기)가 나오면서 ‘외설, 예술’ 논쟁이 처음으로 벌어진다. 여주인공의 모습, 표정, 배경 등이 너무도 음탕하게 그려진데다 애당초 예술작품이 아니었기에 영주도 이를 공개하지 않고 침실에 두고 남몰래 감상했다고 한다.

중세 때 기독교리 상 금기 물로 취급돼 성모상 이외의 누드상은 한 때 자취를 감추었지만 세월이 흘러 오늘 날 미국의 ‘스펜써 터닉'(Spencer Tunick) 같은 예술 사진 작가들까지 등장하고 전 세계에서 한꺼번에 수천 명의 여성들이 아름다운 자신의 몸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밀실도 아닌 야외 등 공개 장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원봉사자(Volunteers)로 나서는 세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벨쥼,프랑스,호주,영국,캐나다,미국,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서 많게는 한꺼번에 1만8천여명(멕시코시티, 2007,5,6), 적게는 5백여명의 남녀(대부분이 여성)가 나체예술 사진작가(Fine Arts Nude Photographer) ‘스펜써 터닉’의 ‘나체 사진 자원봉사 모델’로 참가한 사실을 보고 미국 생활 40년이 되어 오는 필자도 약간 놀랐었다. (사진 참조)

혹, 한국에 ‘터닉’이 온다면 과연 몇 명의 한국 여성들이 호응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아니 이런 목적으로 오는 ‘터닉’을 한국정부에서 입국을 허가할지도 의문이다.

미술 조각 등 누드 예술인들의 생각은 “성(性)은 ‘솔직한 성(性)’이며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은 ‘솔직한 예술’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성(性)은 보편적인 관심분야이며 이것을 독특한 개성으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관능주의 예술(Erotic Art)의 출발점이다. “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문학 음악 영화 등 다른 모든 예술에도 적용될 것이다.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 몇 십 년 전, 저 유명한 ‘프란씨스코 고야'(Francisco Goya)의 명작 중 하나인 ‘옷을 벗은 마하'(18세기, The Naked Maja, 침대에 알몸으로 얌전히 누운 모습)를 국내의 성냥공장에서 성냥갑에 이용했다가 ‘경범죄’로 혼이 난 후 이 그림이 있던 성냥은 시중에서 자취를 감췄었다. 이 그림 대신 여성의 음부만 확대해서 파격적으로 화면 가득 그려 놓은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9세기)의 명작 ‘세기의 기원'(1866, Origin of the World)이었더라면 아마 성냥공장 사장은 분명히 감옥에 갔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예부터 명화 또는 예술품으로 존중받는데 국내에서는 같은 그림도 유죄판결이 난 것이 어디 그 뿐인가.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일본에서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는데 국내에서는 판금 조치와 함께 유죄 판결(김대중 정부에서 복권됨)을 받았다.
사고방식이 열려 있는 나라들은 ‘그런 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하라’며 ‘간통죄’마저 없앤 지 오래 됐다. 그것도 국내에서는 한동안 시간이 흘러야 가능할 것이다.
이웃 일본과 한국 성문화의 차이를 보더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일본 및 유럽 여러 나라의 국민과, 이제 20세기 중반쯤을 가고 있는 듯한 국내 인사들의 뒤쳐진 모습이 대조적이다. 지금의 50대까지 떠나고 난 세상이라면 필자의 이 글은 쓰레기 통 깜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직도 20~30년은 기다려야, 보기엔 그토록 점잖은, 그러나 뒤에서는 별짓 다 하는, 너무도 위선적인 국내 지도급 인사들의 성의식이 현재의 미국이나 일본의 수준이 된다는 뜻이 아닌가.

일본 소설 중에서도 가장 야하다는 ‘실락원'(와타나베 준이치 저) 번역판은 한국에서도 버젓이 베스트 셀러로 팔린 지 오랜데 ‘실락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마 교수의 작품은 주인공인 ‘사라가 대학생이니까 안 된다’는 이유로 ‘유죄’일 수밖에 없는 이상한 잣대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앞서 가는 나라에서는 18세가 넘으면 모두가 성인 대우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출석을 체크할 때 서양의 고등학교 1학년생들까지도 상당수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이름을 부를 때 ‘미스터’ 또는 ‘미tm’를 앞에 붙여 부르는 이유는 학생들을 인격체로 예우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문화의 현주소는 어디쯤인가? “여고 동창회에 나가 친구들 말을 들어 보면 남편 외에 ‘남친’이 하나도 없는 여자는 나 혼자더라, 친구들이 나를 ‘팔불출’ 취급하는데 놀랐다”며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현실, 한국 여성들의 ‘내숭’이 더욱 내숭스러워 보이는 대목이다. 어디 그 뿐인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밝혀졌듯 “상대방의 조건만 좋다면 결혼 후 이성의 인기를 끌 사람도 결혼 대상으로 괜찮은가?” 라는 질문에 남성 15%, 여성 13%만 부정적인 반면 압도적인 남녀는 그런 건 상관없다고 대답했단다. 이 질문의 속뜻은 ‘조건만 좋다면 배우자의 바람 정도는 묵인할 수 있느냐?’는 뜻이 아닌가.

남녀 할 것 없이 서양과 일본에서의 ‘성’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 최고의 선물이다. 몸의 자연스런 욕구를 인간이 만든 윤리 도덕규범에 묶어 스스로 억제하고 고통 받는 짓은 어리석다. 따라서 내 행동이 비밀에 부쳐지는 한 성의 자유는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라는 생각이 사회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법적 배우자가 알면 질투 등 불편해 할 테니 비밀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일본어 사전에는 ‘정조 관념’이라는 단어가 수록돼 있질 않다. 오직 한국 여성에게만 정조관념이 있다”며 자랑스레 말하던 먼 옛날의 선배들 말이 기억난다. 지금의 40대 미만의 여성의 경우 과연 이 말이 아직도 유효할까?

50 여 년 전, 국문학자 양주동 교수는 가끔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이 날 보고 ‘양씨’라 하니 그냥 ‘양씨’려니 하고 산다. 그런데 5대를 못 믿는 세상에 내가 ‘양씨’인 지 박씨인 지 어찌 알겠는가?”고 공개 강의 중 여러 차례 강조했음은 한국 여성들의 바람기를 에둘러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옛날(이조 때까지), 남편만 바라보고 절개를 지켜 온 부인들이 대부분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방방곡곡 여기저기에 거창한 ‘열녀문”(절개가 굳은 부인들을 기리기 위해 정부에서 세운 문)들을 세워 그녀들의 절개를 찬양했겠는가. 이는 열녀가 너무 드물다 보니 이를 장려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물며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 세태에 있어 서랴.

국내의 경우 부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을 양육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묵인하고 산다는 남편 족들이 늘어나고 있는 세태가 아닌가. 국민의 의식이 이 정도라면 ‘성의 빗장을 확 풀어 버렸더니 이성에의 호기심이 오히려 반감함과 동시에 성범죄도 그만큼 줄어들더라’는 앞서가는 나라들의 선례를 언제까지 못들은 척 해야 할는지, 특히 국내에서 법을 다루는 위치에 있는 분들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kajhck@naver.com <820/2012-02-14>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