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칼럼> “서정주는 ‘나쁜 시’도 썼다” 

<김현철칼럼> “서정주는 ‘나쁜 시’도 썼다” 

동국대 석좌교수 신경림 시인(76)이 서정주 시인을 “젊었을 때는 좋은 시를 썼는지 몰라도, 늙어서는 나쁜 시를 쓰고 나쁜 짓을 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 앞에서 ‘축시’를 써주고는 세계일주여행이란 대가를 받았고 이병철 시인은 ‘김일성 찬가’라는 시를 써주고 북한에서 편안한 생활을 보장받았다”고 평가했다. 아마 이 때만 해도 서정주 시인이 젊은 날 친일시를 쓴 사실을 신경림 시인이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어느 문학 써클의 초청강연에서 영국의 ‘워즈워드’ 시인(William Wordsworth, 1770-1850)에 대해 “시인도 좋은 시를 쓸 때가 있고 나쁜 시를 쓸 때가 있다, 그러나 나쁜 짓을 할 때 쓴 시는 다 버리고 그 시를 쓴 동기에 대해서는 비판할 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워즈워드는 전두환에게 축시를 써준 서정주와 비슷한 사람이다. 여성교육을 반대하고, 귀족만 교육을 해야 한다 했던 철저하게 기득권 수주의자였다”고 평가했다.

신경림 시인은 또 “어릴 때 김영랑 시인의 ‘언덕에 바로 누워’를 읽었는데, 당시 김영랑 시인과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영랑 시인과 함께 ‘젊음’과 ‘그리움’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시인한테 내 마음을 들려준다고 생각했다”고 자신의 어린 날을 회상했다.

우리 인간들 대부분이 고작 90년을 살면서 절제를 모르는 지나친 탐욕(물질, 명예, 이성 등) 때문에 ‘양심이 결여된 원칙 없는 생활’ 로 가는 날까지 맑게 살다 가는 사람은 흖지 않은 것 같다.

필자도 어릴 때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 <오장 마쓰이 송가>를 읽은 후부터 존졍심이 사라졌었다.

이 시는 2차 대전 발발 직전, 일본군 항공대 오장(육군 하사)인 경기도 개성 출신 학도병 ‘마쓰이 히데오'(한국명 인재웅, 당시 20세)가 ‘가미카제’ 특공대로 출격, 미 해군 함포에 산화한 사실(일본정부의 오판으로 실은 포로로 생포된 지 3년만인 1946년 1월 10일 귀국함)을 미화한 시로 당시 일본총독부에 철저히 아부했던 미당의 친일 시들 중 대표작이다.

몇 해 전, 고창의 서정주시문학관에 처음 들렸을 때, 미국에 너무 오래 산 죄로 말로만 들어 왔던 <전두환 대통령 탄신58회 축시>를 읽는 동안 필자는 시종 분노와 수치심을 떨칠 수 없었다.

“…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그 몇 해 전 일어난 광주 대학살의 원흉 전두환을 신을 받들 듯 찬양한 이 글을 본 5.18 광주 영령 유족들의 치를 떠는 분노는 하늘을 찌르지 않았겠는가!

3.1독립만세 후, 만해 한용운은 시래기죽으로 연명하다 영양실조로 타계했고 이육사, 윤동주는 베이징과 후쿠오까의 차가운 감방에서 외로운 최후를 맞았다.

이렇게 죽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문인(윤동주,이육사 등)들 말고도 정인보, 변영로, 신석정, 현진건, 김동명, 조지훈, 황순원, 김광섭, 오일도, 이상화, 심연수, 김영랑 등 몇 안 되는 문인들은 아예 붓을 꺾거나 감옥살이로, 또는 집안에 은둔하는 방식으로 부일 협력을 적극적으로 피하며 지조를 지켰다.

위 분들을 제외한 당시 99%의 문인들은 지조를 굽히고 서정주와 크게 다르지 않는 친일 행각으로 배불리 먹고 좋은 직장으로 영화를 누리는 대가를 받고 살다 갔다.

어디 그 뿐인가 일제에 이어 광복 후에는 어느 샌가 애국자로 둔갑,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에 이르는 역대 독재정권에 계속 빌붙어 호의호식했던 해바라기성 문인들의 현란한 변신은 오늘 날 문학사를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현기증을 안겨 줄 정도가 됐다.

어찌 이 경우가 문인들에게만 국한되겠는가. 이 세상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똑같이 해바라기 근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육신을 지니고 사는 동안만을 우리 인생의 전부로 아는 속된 시각으로는 지도급 인사들 중 해바라기성 인생을 살다 간 분들이 오히려 약삭빠르고 영리한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육신을 벗은 유명(幽冥 = The next world)의 세계까지를 ‘내 전체 인생’으로 확대해 볼 수 있는 경지라면, 몸의 통증이 있어서 가능한 영적인 교육 및 정진을 위해 이 세상에 유학 왔고 훗날 되돌아가 영생함을 믿기에, 양심과 지조가 초지일관 이어지는, ‘원칙이 분명한 삶’이 이뤄질 수 있으리라.

이렇게 모든 인생의 불과 1%도 못되는 영적 영재(靈的 英才 = Spiritually talented people)들이나 할 수 있는 어려운 경지이기에 값비싼 보석처럼, 어두움 속에서도 그들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것이다.(kajhck@naver.com) <817/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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