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24>

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24>

▲날마다 낚시를 하던 꼬히마르 만을 바라 보고 있는 헤밍웨이 동상,

▲날마다 낚시를 하던 꼬히마르 만을 바라 보고 있는 헤밍웨이 동상,

극심한 통증에서 온 우울증으로 자살
술,담배,여자,사냥,낚시 즐긴 겸손한 멋쟁이

1961년 7월 2일 이른 새벽. 헤밍웨이는 미국 아이다호(Idaho) 주 케첨(Ketchum)의 고향집에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나이 만 61세 때였다.
메어리 부인은 처음, 장총을 닦다가 오발사고로 죽었다고 말했지만 5년 후에는 경찰에 자살이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헤밍웨이는 사망 직전 정신 질환 때문에 계속 받는 전기충격요법에서 오는 감당치 못할 고통과 비행기 사고 때 얻은 뇌 손상 등에서 오는 고통 등을 못 이겨 평소 사용하던 사냥총을 세워놓고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 목과 뇌를 가격, 자살한 것이다.
헤밍웨이는 사 후 20년간 후세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는데 대표 작품으로는“태양은 언제나 뜬다(Sun Also Rises),”“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등 수많은 명작을 남기고 있다.

▲명배우

▲명배우 ‘게리 쿠퍼’와 함께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를 주연했던 여배우 ‘잉그릿 버그만’과 밀회를 즐기던 헤밍웨이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기자로, 소설가로 명성을 떨치면서 사냥과 낚시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 여자까지 즐길 줄 알았던 멋쟁이 이었다.
수많은 명작들을 남기고 떠난 그는 부도 명예도 향락도 온 세상 것을 다 누렸지만 최후는 너무 비참한 것이었다.
헤밍웨이의 아버지, 누이, 동생 등 모두 다섯 식구가 최후를 자살로 마감했는데 주치의와 전기 작가들은 우울증, 편집증 등 정신적 질환이 헤밍웨이 집안의 내력으로 보고 있다.

▲생전에 헤밍웨이가 즐겨 타던 골동품 자가용차

▲생전에 헤밍웨이가 즐겨 타던 골동품 자가용차

‘노인과 바다’의 배경인’ 꼬히마르'(Cojimar) 해변에는 이곳 어부들이 헤밍웨이가 죽자 ‘잊어서는 안 되는 친구’의 동상을 만들기 위해 배 밑에 있는 프로펠러를 모아 녹여서 동상을 제작, 헤밍웨이가 낚시하던 바다를 향해 세워 놓았다. 그만큼 헤밍웨이는 서민적이고 겸손해서 상대방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어부들이 고기를 잡아와 다 팔지를 못할 때는 헤밍웨이가 여기 저기 주선해서 고기를 모두 팔아 주는 등 인간미가 물씬했던 ‘좋은 친구’로 어부들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계속)  794/201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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