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21>

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21>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 탄 헤밍웨이
그의 체취가 느껴지는 박물관

▲헤밍웨이박물관 정문 앞

▲헤밍웨이박물관 정문 앞

하바나 남동쪽 교외의 ‘헤밍웨이박물관'(Museo Hemingway)은 미국의 대문호 겸 기자였던 ‘어니스트 헤밍'(Ernest Hemingway, 1899~1961)의 체취가 남아있는 곳, 헤밍웨이가 22년 간 살던 집으로 열대 식물들이 꽉 들어찬 정원을 배경으로 하바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얕은 언덕의 저택이다.
‘핑카 비히하'(Finca Vigia = “Lookout Farm”=’전망대’ 농장이라는 뜻),라 부르는 이 흰 건물은 지금부터 125년 전에 세워진 것이다.

까스뜨로가 그토록 싫어하던 미국, 그러나 미국인 헤밍웨이를 삿적으로 서로 좋아했고 오늘 날 큐바는 헤밍웨이 박물관을 외화벌이의 창구로 활용하고 있으니 문학에는 국경이 없다는 뜻일 게다.
이 집에서 창작한 <노인과 바다>의 실제 모델인 그레고리오 푸엔테스(Gregorio Fuentes, 2002년 104세로 사망)는 헤밍웨이가 처음 큐바에 왔던 1928년에 낚시 친구로 처음 만났고 후에 헤밍웨이의 보트 관리인으로 일을 했는데 1960년 헤밍웨이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요리를 해주고 낚시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푸엔테스 옹은 헤밍웨이의 저택을 상속받았으나 이를 큐바 정부에 헌납해 지금의 박물관이 되었다 한다.

▲대어를 낚아 미인의 축하 악수를 받는 헤밍웨이
▲대어를 낚아 미인의 축하 악수를 받는 헤밍웨이

큐바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서 1932년에 큐바에 이주한 헤밍웨이는 큐바에서 스페인의 체취를 느꼈던지 7년 간 하바나 시내의 ‘암보스 문도스'(Ambos Mundos) 호텔 511호에서 네 번째 부인(마지막) 메어리 웰쉬(Mary Welsh)와 살면서 스페인 내란 문제를 다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17개월간에 걸쳐 집필했다. 이는 ‘노인과 바다’보다 10년 앞 선 작업이었다.

저녁때가 되면 레스토랑 플로리디따(La Floridita)에 자주 가서 ‘다이끼리'(영어로는 ‘데커리’, Daiquiri)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환담했다고 한다. 현재 헤밍웨이가 그 술을 즐기던 자리에 헤밍웨이의 입상(동상)을 세워 놓아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투어 사진을 찍는 곳이 되었다.

또 ‘보데끼따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 식당에서는 칵테일 ‘모히또'(Mojito)를 마시며 친구들과 어울렸다 해서 관광객들은 위 세 곳을 찾아가 같은 술을 마시곤 한다.

친구가 많았던 헤밍웨이(1989~1961)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 너무 많은 친구들이 찾아오는 바람에 집필이 거의 불가능해지자 1939년에 하바나에서 약 24킬로미터, 약 20분 거리인 싼프란시스꼬 데 빠울라(San francisco De Paula) 지역의 현 박물관 자리(핑카 비히하)로 세를 들어 옮겼다가 다음 해에 이 집을 사들인 후 1961년까지 살았으니 헤밍웨이는 전 생애의 거의 절반인 29년간을 큐바에서 산 셈이다. (계속) 791/2011-07-13 <김현철 / 전 본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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