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20>

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20>

혁명 전 미국과의 교역량은 무려 85%
큐바 내 외국기업 모두 국유화

▲혁명 전 큐바에서 사업하던 수많은 미국 기업 중 하나인
▲혁명 전 큐바에서 사업하던 수많은 미국 기업 중 하나인 ‘아메리칸 프리미어 발레단’의 연습

 

 

 

 

 

 

 

 

 

 

 

 

 

 

 

당시 미국에서 재정 및 무기 지원을 받던 독재자 바띠스따는 1958년 12월 31일 정권을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바로 다음 날인 1959년 1월 1일 새해와 함께 까스뜨로에 의해 큐바 혁명전쟁의 승리가 선포된 이래 피델 까스뜨로는 건강 악화로 은퇴 시까지 만 52년 간 큐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 혁명 정부의 수반을 역임한 것이다.

그의 후계자는 처음부터 혁명동지요, 친 동생인 라울 까스뜨로(79)가 선출되었다.
필자는 아우 되는 라울이 북한처럼 형 피델의 압력으로 선출되었다고 추측했었으나 큐바에 와서 지식 층 큐바인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피델의 영향력이 아닌, 공산당원들이 자기네 당원 중 한 사람을 선출하는 과정을 통해서 체 게바라가 사살된 후 줄곧 정부의 2인자 자리를 지키던 라울을 후임으로 선출한 것임을 알았다.

그러면 미국의 큐바 경제 봉쇄(Economic Sanctions against Cuba) 정책이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기에 큐바가 그토록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현지에서 알아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애당초 혁명 전에 큐바는 전체 무역량의 85%가 미국과의 무역이었다.
혁명 직후부터 대 미 무역이 중단됨으로써 큐바는 경제적으로 치명타를 당한다.
미국의 요구는 혁명 후 큐바가 국유화 한 큐바 내의 모든 미국 기업을 다시 내놓으면 경제 봉쇄를 풀겠다는 것이었으나 큐바 입장에서는 만일 미국 기업이 전처럼 큐바 내에서 사업을 계속하게 되면 혁명 정부의 큰 걸림돌로 작용해 혁명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아직도 경제 봉쇄는 계속되고 있다.

▲혁명 전 큐바의 프로 야구단
▲혁명 전 큐바의 프로 야구단 ‘캐리비안’도 미국 기업 소유였다.

 

 

 

 

 

 

 

 

이어 미국은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 선박도 사업을 목적으로 큐바에 입항할 경우 그 배는 미국 항에 들어 올 수 없도록 조치함으로써 미국과 교역을 하고 싶은 나라들은 큐바와 무역을 중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또 전 세계의 큐바 정부 소유 은행 계좌를 미국이 봉쇄함으로써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해도 미화 ‘달러’로 입금시킬 수 없게 되어 무역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었다.

큐바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외국에서 돈을 빌려 오고 싶어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의 보복이 두려워 주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거기에다, 미국에서 수입해 오던 상품을 유럽에서 들여오게 되니 수송비가 몇 배 올라버려 큐바 경제는 그만큼 타격을 받게 되었다.
결국 큐바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 무역을 강화할 수 밖에 없었으며 소련의 미사일기지까지 갖다 놓음으로써 미국의 강한 반감을 샀다.  그 후 1989년 소련과 동유럽권의 멸망으로 큐바는 국제 무역량의 75%를 잃는 큰 타격을 입음으로써 국민 연간 소득이 고작 5천 달러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계속) kajhck@naver.com <790/201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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