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18>

혁명광장 어디에도 까스뜨로 동상과 사진은 없었다. 탑 앞에 호세 마르띠의 흰 대리석상이 보인다.

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18>

몸은 죽었으나 아직 살아있는 체 게바라의 인기
밤 9시에는 지금도 성에서 대포를 쏘고

살사 룸바 볼레로 맘보 차차차의 고향, 발레와 영화와 배구 축구 야구에 열광하는 “명랑한 사회주의”의 나라, 뜨로피카나 쑈(Tropicana Show)의 화려한 율동과 아바네라(Habanera)로 대표되는 흥겨운 유러큐반(EuroCuban Music) 음악이 넘치는 곳, 시간이 멈추고 사랑이 정열을 더하는 곳, 바로 이 나라 큐바다.

▲매일 밤 9시에 쏘는 대포

▲매일 밤 9시에 쏘는 대포

잦은 해적들의 약탈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입구에 쌓은 견고한 성. 해안선을 향하고 있는 대포는 지금도 옛날의 큐바를 재연하듯 매일 밤 9시에 불을 뿜고, 대포를 쏘는 의식이 끝난 다음에야 성문은 닫힌단다.

평소 큰 행사 때면 약 백만 명이 모인다는 ‘혁명 광장'(혁명 전 이름은‘마르띠 광장’)에는 127미터 높이의 혁명탑이 서있고 1895년에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42세의 젊은 나이에 총살당한 교수이자 작가인 큐바의 유명 시인‘호세 마르띠’(큐바의 독립 및 건국 영웅으로서 1957년부터 존재한 석상)의 22미터 높이의 대리석상이 혁명탑 앞에 서있다.

큐바의 상징적인 노래 “관따나메라”(Guantanamera, 관타나모의 여인)의 가사가 바로 이 시인의 시이기도 하다.

▲혁명광장 앞에 있는 내무성 건물 앞의 체 게바라 그림

▲혁명광장 앞에 있는 내무성 건물 앞의 체 게바라 그림

혁명광장에 서 있는 동상이 분명 ‘피델 까스뜨로’이리라고 여겼던 기자의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동상의 주인공은 이 나라의 독립 영웅 ‘호세 마르띠’였고, 국제공항의 이름도 또한 ‘호세 마르띠 공항’이다. 까스뜨로는 김일성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던 것이다.

광장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혁명 동지 ‘까밀리요 씨엔푸에고스’의 상이 통신부 건물 전면에 굵직한 검은 철선으로 그려져 있고 서북쪽으로는 ‘체 게바라’의 상이 내무성 건물 앞에 그려져 있으나 막상 있어야 할 까스뜨로 형제의 상은 어디에서고 찾아 볼 수 없었다.
서와 동 중간에는 예술극장이 있고 또 동쪽에는 호세 마르띠 국립도서관과 혁명무력부(국방부와 같음), 경제기획원 그리고 남쪽으로는 공산당본부, 정무원본부, 국가평의회 등 혁명광장을 중심으로 국가 주요 기관이 밀집해 있다.

‘세계의 억압받는 민중을 대신해서 행동하고 말하려는 빈민대중의 친구’‘체 게바라’가 1956년 멕시코에서 동지 ‘피델 까스뜨로’를 만나서 의기투합, 함께 큐바 빈민 해방 투쟁에 나섰고 혁명이 성공하자 1959년 1월부터 약 6년간 가족과 함께 살던 집 겸‘체 게바라 혁명군 사령부’건물이 지금도 노란 색으로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계속)  788/201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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