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8>
큐바의 하늘빛 같이 아름다운 까리브 해변
산업부차관, 공군참모차장, 까스뜨로 경호관,
큐바항공사 창설자 등 빛나는 한인 후예들
후에 공군참모차장까지 승진한 이헤르베르또 중령이 MIG 전투기를 조종하러 가던 모습.
큐바 한인 중에는 정부 차관급을 비롯해서 공군참모차장, 까스뜨로 경호관, 큐바항공사 창립자 등 큐바인들이 무시 못할 지나 간 인물들이 많다.
피델 가스뜨로와 하바나대학교 법학과 동기동창인 임은조(헤르니모)씨는 혁명 당시 까스뜨로의 동지로서 피델은 하바나 외곽에서 임씨는 하바나 시내에서 바띠스따 정부군을 상대로 투쟁했다.
큐바 공산당 정당원인 임씨는 혁명 성공 후 하바나 경찰국장에 임명되었으나 기질이 안 맞아 얼마 후 체 게바라가 장관으로 있는 공업부 식료품공업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가 까스뜨로로부터 여러 공로표창장을 받은 후 다시 산업부 차관으로 승진해 은퇴할 때까지 봉사했다. 한국계로는 최고 직에 오른 인물이다.
그 어려운 농부 생활을 하면서도 구한말 황실의 군장교였던 아버지 임천택 선생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동포 농부들에게서 많은 돈을 모아 김구 선생 등 독립투사들에게 송금하는 등 공로로 광복 후 모국 정부의 공로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였다.
이 때 애니깽 농장에 농부로 온 분들 대부분이 구한말 군 장교 출신들이었기에 그 어려운 타국의 농부로 갈 용기들이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인물들을 보자. 박쌍주(루이사) 할머니의 오빠되는 고 박 중령(성명 미상)은 까스뜨로의 경호관으로 까스뜨로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까스뜨로의 직계였기에 큐바의 모든 공무원들이 두려워했던 존재였다.
그밖에도 이 헤르베르또 공군중령은 큐바 최초로 당시 소련의 정예전투기 MIG를 조종했던 인물로 큐바 공군 참모차장 직에 까지 올랐다 은퇴한 인물이다.
그리고 박 안토니오는 큐바항공사 창설자로 한국인의 우수성을 큐바에 과시한 인물 중 하나였다.(계속) 2011-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