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5>

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5>

1991년 3월 1일 큐바 '마나띠'에 세운 한인기념비 제막식 후, 한인 후예들, 앞줄 가운데 분홍 저고리가 고 임은조씨, 우측 끝 노랑 한복이 부인 장끄리스띠나 할머니.

1991년 3월 1일 큐바 ‘마나띠’에 세운 한인기념비 제막식 후, 한인 후예들, 앞줄 가운데 분홍 저고리가 고 임은조씨, 우측 끝 노랑 한복이 부인 장끄리스띠나 할머니.

훼손돼가는 한인기념비 살려 주실 분을 찾습니다

“우리 전통 문화 계승 목표…” 눈물겨운 한인기념비문
1905년 멕시코로 건너 온 애니깽 농장 농부 중 다시 330명이 멕시코에서 1921년 3월 25일, 큐바의 애니깽(Henaquen = 영어로는 Agave = 용설란)농장으로 옮겨왔는데 이 한인 1세들을 기념하기 위해 임은조(Hernimo Lim)씨가 주축이 되어 지난 2001년과 2005년 3월 초하루, 조국의 3.1독립만세 기념일에 맞춰 각계의 지원을 받아 조부모님들이 큐바에 첫 상륙했던 동남부 큐바 마나띠(Manati)항과 하바나에서 가까운 마딴사스(Matanzas) 엘볼로(El Bolo, 전 애니깽 농장 자리) 마을에 각각 약 50평방미터 너비의 한인기념비를 세웠다.

훼손되어 가고 있는 큐바한인기념비

한인기념비 철책이 없어지고 기둥만 남아있다. 뒤에 심은 식물이 애니깽이다. 

그러나 그 후 아무도 돌보질 않아 기념비가 훼손되어간다는 것, 얼마 지나면 자취도 없
질 텐데 이를 보수할 재정을 마련해서 큐바 한인 대대로 물려 줄 기념비를 재건할 수 있다면 이제 세상을 떠도 여한이 없겠다며 장 할머니는 울먹인다.

독립운동가의 며느리요, 한인회장 출신 남편을 둔 아내답게 장 할머니는 “한국인임을 잊지 않게 후손들을 가르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우리네 할아버지들이 큐바에 처음 온 기념비’라며 자손대대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미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들께서 도와주세요.”하고 울었다.

장 할머니의 애국심이 가득한 호소가 마음에 걸려 다음 날 기자는 차를 빌려서 하바나에서 1시간 반 거리인 마딴사스로 가서 직접 기념비를 들여다보았다.

기념비의 페인트도 벗겨져 가고 보호철책은 기둥만 남고 중간 철책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가장 값싸고 튼튼하게 복원하려면 전번의 철망대신 붉은 벽돌로 담을 쌓야야 할 것 같았다. 하바나에서 차로 15시간 이상 걸린다는 마나띠 항에 있는 기념비도 비슷하게 훼손되었단다. 기자가 통역과 함께 대강 확인한 수리비용은 두 기념비 모두 약 $3천 정도면 가능한 것인데 현지 동포들이 너무도 어렵게 살기에 돈 3천 달러를 모을 수가 없는 실정이 안타까웠다.

기념비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고국의 역사와 언어를 가르치고 한국학교를 세우며 교회와 한인회를 설립해서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후예들이 이 귀중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여기 기념비를 세운다…”라 쓰여 있었다.

구한말(조선)에 우리나라 최초로 발행된 여권(당시에는 집조 = 執照라 했다).

구한말(조선)에 우리나라 최초로 발행된 여권(당시에는 집조 = 執照라 했다).

장 할머니가 집에 보물처럼 보관 중인 책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임 헤르니모씨의 여동생 마르따(Martha)씨와 남편되는 라울 루이즈(Raul Ruiz) 공동 저서로 지난 2000년에 출판된 ‘큐바의 한국인들'(Coreano En Cuba)이다. 큐바의 한민족 역사를 많은 사진과 함께 상세히 엮어 낸 첫 중요자료로서 곁에 나란히 꽂혀있는 한국보훈처(독립기념관)‘국외독립운동 사적지 실태보고서 3호(2006)에도 한인기념비와 이 책 사진 등이 중요 역사 자료로 소개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2011-03-09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