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3>

김현철 기자의 큐바통신 <3>

▲고 임은조(헤르니모) 전 큐바 정부 산업부차관과 장 끄리스띠나 할머니(오른쪽 상단)

▲고 임은조(헤르니모) 전 큐바 정부 산업부차관과 장 끄리스띠나 할머니(오른쪽 상단)

임은조씨 한국계 최고직인 산업부차관 
하바나경찰국장, 식품공업국장 등 요직 역임

전에 큐바 한인회장과 이 나라 산업부차관을 지낸 임 헤르니모(한국명은 임은조, 5년 전 79세로 작고)씨 미망인 끄리스띠나 장 할머니(82, 하바나 시내 거주)를 만나러 택시를 잡았다. 이왕 큐바까지 왔으면 한 두 동포는 만나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에서다.

큐바 거주 동포는 9백 명 정도, 그 중 아직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한국계는 불과 60여명 정도고 나머지는 모두 큐바인들과 피가 섞인 혼혈아들로 외모는 한국사람 같지 않단다.
순수 한국계인 장 할머니는 기자와는 처음이지만 10 여 년 전 남편 되는 임씨(한국 독립운동가 임천택의 장남)와는 마이애미의 양 목사 댁에서 두 번이나 만나 인터뷰(당시 임씨는 큐바 한인회장이었음)도 했었기에 친밀감을 느낀다.

한국산 쏘나타를 모는 택시 운전기사가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고 짧은 영어로 한국 차가 좋다면서 잔뜩 치켜세우며 달리다 30여분 만에야 구 시가지에 있는 집을 물어물어 찾았다.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신시가지에 비해 많은 건물들이 망가져 가도 보수할 생각을 못 하는 듯 방치 상태였고 페인트 칠은 언제 했는지 모를 정도로 보기 민망스런 모습을 한 집들이 많았다.

백발이 성성하나 말소리에는 힘이 넘치는 장 할머니는 처음 본 기자를 반기면서 선물로 사간 닭고기를 보자 짧은 영어로 고맙다고 인사한다.
남편 임씨도, 장 할머니도 1921년 부모님이 멕시코에서 큐바로 들어 온 후에 태어났기에 부모님을 통해 배운 짧은 한국어는 거의 다 잊었단다.

장 할머니는 가보로 보관 중인 사진 앨범 등을 한 보따리 내놓는다.
임헤르니모 씨가 국내 여행 시 한국정부에서 준 해외 동포 공로상을 비롯해서 ‘피델 까스뜨로’와는 하바나대학 법학과 동기동창으로 혁명 당시 하바나 시내에서의 투쟁 등 공로로 ‘하바나 경찰국장’, ‘체 게바라’가 공업부장관으로 있을 때 그 밑에서 ‘식료품공업국장’, 마지막에는 큐바 거주 한인 중 최고직책인 ‘산업부 차관’으로 근무하면서 까스뜨로 국가평의회 의장에게서 받은 각종 훈장과 표창장 등이 즐비해 한인 후예로서 그 분의 일생은 훌륭했음을 느낀다.

저녁에 호텔에 돌아오니 스넥 바(Snack Bar = 간이식당)에서 ‘라 팔로마'(La Paloma)를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다.
옛날 어린 시절 우리 집 축음기(레코드)판으로 듣던 아름다운 이 노래는 하바나 항구를 떠나는 선원들이 정들었던 찌니따(중국계 매춘부)와의 이별의 아쉬움을 노래한 것으로 “외로운 내 배 하바나를 떠날 때, 내마음 슬퍼 눈물이 흘렀네……”하고 시작한다.
이 가사는 1938년 테너 이인선이 서울에서 독창회를 열었을 때 불렀던 노래로 그 때 한국에 처음 알려진 명곡이다.
귀엽게 생긴 큐바 여자 피아니스트에게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원을 만들어 높이 들며 피아노 솜씨가 훌륭하다는 뜻으로 인사를 했더니 고맙다며 머리를 숙여 답례한다.

큐바의 ‘다이끼리’를 한 잔 시켜 마시면서 한창 음악에 취해있는데 정문에서 왁자지껄 손님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동양계 관광단이다. 가까이 오면서 들리는 소리가 한국어였다.
이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벌써 몇 해 전부터 한국정부에 통고만 하면 큐바 여행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세상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그 날 밤에 또 두 그룹이나 한국 여행객들이 이 호텔에 밀려 들어왔다.(계속) 773/2011-02-23

Top